🏛️ 1545년 포토시: 은(銀)으로 쓴 세계화의 첫 페이지
1545년, 볼리비아의 고원 지대에서 발견된 포토시(Potosí) 은광은 단순히 '운 좋은 발견'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잠들어 있던 전 지구적 경제의 엔진을 깨운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는 이곳을 "세상의 보석함"이라 불렀고, 유럽인들은 이곳을 지상 낙원의 금광에 비유했습니다.
1. 잉카의 전설에서 스페인의 심장으로
포토시의 상징인 세로 리코(Cerro Rico) 산은 해발 4,800m에 달하는 척박한 고산 지대였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잉카의 황제 우아이나 카팍이 이곳을 파려 했을 때, 산속에서 "이곳의 은은 너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주인을 위한 것"이라는 천둥 같은 목소리가 들려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 뒤, 스페인은 그 '다른 주인'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1545년 발견 이후 불과 몇십 년 만에 포토시는 인구 16만 명의 대도시로 성장했습니다.
당시 런던이나 파리와 맞먹는 규모였으며, "전 세계의 돈이 모이는 곳"이라는 명성을 얻게 됩니다.
2. 혁신적이었으나 잔혹했던 '수은 아말감' 공법
초기에는 은을 직접 가열해 얻었으나 곧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이때 도입된 것이 바로 수은 아말감 기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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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원리: 은 광석을 잘게 부순 뒤 수은과 섞어 은만 따로 추출하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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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량 폭발: 이 기법 덕분에 저급 광석에서도 은을 뽑아낼 수 있게 되면서 생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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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인간의 비용: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수은 중독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정제소 주변의 토양과 강은 수은으로 오염되었고, 이는 역사상 초기 대규모 환경 파괴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3. 포토시 은이 만든 '나비효과': 세계 경제의 재편
포토시에서 쏟아져 나온 은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1) 스페인의 황금기:
스페인은 이 은으로 무적함대를 육성하고 유럽 내 전쟁 비용을 충당했습니다.
2) 가격 혁명 (Price Revolution):
유럽 내 은의 양이 너무 많아지자 물가가 3~4배 폭등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봉건 영주 세력을 약화시키고 상업 자본가들이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 중국 명나라의 은본위제:
당시 세계 최대의 제조 강국이었던 중국(명나라)은 포토시의 은을 흡수하는 블랙홀이었습니다.
세금을 은으로 내게 하는 '일조편법'이 시행된 것도 결국 포토시에서 흘러나온 은이 전 세계를 돌았기에 가능했습니다.
4. 어두운 그림자: '미타(Mita)' 제도의 비극
부의 축적 뒤에는 원주민들의 고통이 있었습니다.
스페인은 과거 잉카의 부역 제도였던 '미타'를 변질시켜 원주민들을 광산에 강제로 투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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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입구: 광부들은 한 번 갱도에 들어가면 일주일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하고 노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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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의 규모: 수많은 원주민과 아프리카 노예들이 사고, 질병, 그리고 수은 중독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로 리코 산을 "사람을 씹어 삼키는 산"이라 불렀습니다.
🏁 마치는 글: 포토시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
포토시 은광은 근대 자본주의의 탄생을 알린 '글로벌 통화의 발상지'인 동시에, 자원 착취가 가져오는 참혹한 대가를 보여주는 역사적 거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글로벌 결제 시스템의 시초가 500년 전 안데스 산맥의 차가운 광산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