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의 은(Silver) 베팅: 가치 투자자의 이례적인 행보
"금은 아무런 생산성이 없어 투자 가치가 없다"고 공언하던 워런 버핏.
그런 그가 1997년 어느 날, 전 세계 은 재고의 상당 부분을 사들였다는 뉴스는 월스트리트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버핏은 왜 자신의 철학을 깨고 '은'이라는 금속에 거액을 던졌을까요?
1. 전설의 시작: 1억 2,970만 온스의 쇼핑
1997년 말, 시장에는 정체불명의 거대 자본이 은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1998년 2월, 버크셔 해서웨이는 보도자료를 통해 그 주인공이 자신들임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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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집 규모: 약 1억 2,970만 온스. 당시 가격으로 약 6억 5천만 달러(현재 가치로는 수조 원대 영향력)에 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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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집 기간: 1997년 7월부터 1998년 1월까지 약 6개월간 은밀하게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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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중: 당시 전 세계 가용 은 재고의 약 20~30%에 육박하는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2. 왜 은이었나? 버핏의 '가치 투자' 논리
버핏은 투기꾼들처럼 가격 상승만을 바라고 도박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은을 '철저하게 저평가된 원자재'로 보았습니다.
① 공급과 수요의 역설
1990년대 중반, 은의 수요는 연간 약 1억 온스씩 공급을 초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은값은 여전히 바닥을 기고 있었죠.
버핏은 이 불균형이 계속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② 산업적 필수재로서의 가치
금은 장식용이나 안전자산 성격이 강하지만, 은은 산업 전반에 쓰이는 소모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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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급성장하던 사진 필름(은염)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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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제품과 자동차의 전기 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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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기 및 거울 제조 버핏은 "사람들이 은을 계속 쓸 수밖에 없는데, 재고는 줄어들고 있으니 가격이 오르는 건 시간문제"라고 보았습니다.
③ 인플레이션 헤지가 아닌 '수급 분석'
그는 금처럼 경제 위기를 대비해 산 것이 아니라, 단순히 "물건값이 가치보다 싸기 때문에" 샀습니다.
이는 주식을 고르는 기준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3. 시장의 반응: "제2의 헌트 형제인가?"
버핏의 발표 직후 은값은 온스당 $4.50에서 $7.00 이상으로 수직 상승했습니다.
런던 금속거래소(LME)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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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 의혹: 과거 시장을 교란했던 헌트 형제의 트라우마 때문에, 영국 당국은 버핏이 시장을 독점(Cornering)하려는 것인지 조사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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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의 답변: "우리는 시장을 교란할 의도가 전혀 없다. 단지 수급 상황이 매력적이라 판단했을 뿐이며, 장기 보유할 계획이다."
4. 엑시트(Exit)와 결과: 역시 버핏인가, 아니면 실수인가?
버핏은 2006년 연례 주주총회에서 은을 모두 처분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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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률: 정확한 매도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매입가($4~5) 대비 상당한 차익을 거둔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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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타이밍?: 공교롭게도 버핏이 은을 판 직후부터 은값은 본격적인 랠리를 시작해 2011년 온스당 $50 근처까지 폭등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버핏이 너무 일찍 팔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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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의 입장: "은은 보관료가 들고 배당을 주지 않는다. 더 좋은 투자처(주식)를 찾았기 때문에 자금을 이동시킨 것뿐이다."
💡 명나라부터 버핏까지 이어지는 '은'의 교훈
역사적으로 은은 국가를 망하게 하기도(명나라), 개인을 파산하게 하기도(헌트 형제) 했습니다.
하지만 워런 버핏은 은을 '통계와 수급에 기반한 냉철한 투자 대상'으로 바라봄으로써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결국 자산의 종류가 무엇이든, 철저한 분석과 인내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가치가 빛난다는 것을 버핏은 은 투자를 통해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