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은의 50%를 꿈꿨던 헌트 형제의 '실버러시'와 몰락
석유 재벌 가문의 아들들이었던 넬슨 벙커 헌트와 허버트 헌트 형제.
그들은 왜 총칼도 없이 전 세계 경제를 인질로 잡으려 했을까요?
1970년대 말부터 1980년까지 이어진 이 거대한 사기극 같은 실화를 정리했습니다.
1. 시대적 배경: "달러는 종이조각일 뿐이다"
1970년대 미국은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베트남 전쟁의 여파와 오일 쇼크로 인해 물가는 치솟았고(인플레이션), 달러 가치는 곤두박질쳤습니다.
이때 텍사스의 석유 거부였던 헌트 형제는 독특한 생각을 합니다.
"정부가 마구 찍어내는 달러는 가짜다. 금은 정부가 소유를 규제하고 있으니, 규제가 덜한 '은'을 싹쓸이해서 우리만의 화폐 제국을 세우자!"
2. 전략: 선물 시장의 허점을 파고든 '코너링(Cornering)'
헌트 형제는 단순히 은을 사 모으는 수준을 넘어,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는 '코너링' 작전을 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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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리지의 마법: 자기 돈뿐만 아니라 막대한 대출을 받아 은 선물(Futures)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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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물 인수(Physical Delivery): 보통 선물 거래는 만기 전에 계약을 되팔아 차익을 챙기지만, 헌트 형제는 "실제로 은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시중에 유통될 은이 이들의 개인 창고로 계속 사라지자 시장은 패닉에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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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자본과의 결탁: 헌트 형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부호들과 손잡고 '인터내셔널 메탈(International Metals)'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자금 규모를 더욱 키웠습니다.
3. 절정: 은숟가락까지 시장으로 나오다
1979년 초 온스당 $6이었던 은값은 1980년 1월 $49.45까지 치솟았습니다.
무려 800% 이상의 상승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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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 현상: 은값이 미친 듯이 오르자 전 세계 가정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은식기, 은촛대, 심지어 할머니의 은비녀까지 녹여서 팔기 위해 전당포 앞에 긴 줄이 늘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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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계의 위기: 필름 제조사(코닥)나 전자 부품 업체들은 원자재인 은값이 너무 비싸져 부도 위기에 처했습니다.
4. 반격: 게임의 법칙을 바꾼 거래소와 정부
헌트 형제가 은 시장의 50% 가까이를 장악하며 승리하는 듯 보였을 때, 미국 연준(Fed)과 선물거래소(COMEX)가 강력한 '룰 변경'을 단행합니다.
1) 실버 룰 7(Silver Rule 7):
신규 매수를 금지하고 오직 '매도'만 가능하게 했습니다.
즉, 살 사람은 없고 팔 사람만 있게 만든 것이죠.
2) 증거금(Margin) 인상:
은을 사기 위해 빌린 돈의 담보 비율을 대폭 올렸습니다.
헌트 형제는 당장 수억 달러의 현금을 추가로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몰렸습니다.
5. 최후: 1980년 3월 27일 '실버 서스데이'
더 이상 증거금을 낼 현금이 부족해진 헌트 형제가 은을 대량으로 투매하기 시작하자, 은값은 자유낙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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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 만에 $15 밑으로 폭락: 헌트 형제는 하루 사이에만 11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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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과 처벌: 결국 헌트 형제는 1988년 파산 선고를 받았고, 시장 조작 혐의로 거액의 벌금과 함께 평생 상품 거래 금지 명령을 받았습니다.
💡 역사적 교훈: 은은 다시 흐른다
명나라를 무너뜨렸던 은의 흐름이 20세기에는 한 재벌 가문을 무너뜨렸습니다.
헌트 형제 사건은 "아무리 큰 부자라도 시장 전체를 이길 수는 없다"는 금융계의 격언을 남겼습니다.
또한, 이 사건 이후 전 세계 원자재 시장은 특정 세력의 독점을 막기 위한 더욱 촘촘한 감시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