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동쪽, 아칸 국립공원 인근.
이름도 낯선 작은 마을, **테시카가(弟子屈)**는
크게 말하지 않아도, 강하게 인상 남기는 장소였습니다.
여긴 유명 리조트도 없고, 번화한 거리도 없어요.
그 대신, 잔잔한 호수, 온몸을 감싸는 김,
그리고 깊게 퍼지는 침묵이 있죠.
이번 여행은 그 고요함 속에서,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 DAY 1 – 삿포로에서 동쪽 끝으로
경로: 삿포로 → 쿠시로 →
마슈역 (摩周駅)
교통: JR 특급 오조라 +
세네토쿠선 / 소요 시간 약 5~6시간
삿포로역에서 출발한 아침 열차는 도시의 풍경을 천천히 지워나갑니다.
창밖으로 보이던 건물들이 점차 줄어들고,
넓은 벌판, 간간히 흐르는 강, 설산이 배경처럼 지나갑니다.
쿠시로를 지나
**마슈역(摩周駅)**에 내리는 순간,
공기가 확연히 달라집니다.
맑고 쨍하면서도 어디선가 유황 냄새가 희미하게 나는 기운.
이 지역이 화산지대라는 걸 단번에 느낄 수 있었어요.
렌터카를 빌려, 오늘 밤을 보낼
**굿샤로호(屈斜路湖)**로 이동합니다.
가는 길엔 구불구불한 숲길과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지열 연기가 펼쳐져
마치 지구가 살아 숨 쉬는 듯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 체크인 – 굿샤로호 언덕 위 료칸
굿샤로호 주변에는 조용한 온천 료칸이 많아요.
제가 머문 곳은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료칸.
방 창문을 열면 수평선처럼 펼쳐진 호수와 바람에 스치는 갈대밭,
그리고 저 멀리 백조 무리가 노니는 모습이 보였어요.
여기 온천은
식물성 모루 온천.
보통 투명한 온천수와 달리, 갈색빛이 감도는 이 물은
수만 년 전 식물 퇴적층에서 스며나온 자연의 정수입니다.
피부에 닿는 감촉이 정말 부드럽고,
온천 후엔 바디로션이 필요 없을 정도로 촉촉해져요.
노천탕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고,
여행이란 결국 이런 멈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저녁 – 도카치의 맛, 자연의 식탁
료칸에서 제공된 저녁은 ‘음식’이라기보다
한 편의 ‘계절 이야기’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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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카치 흑우 스키야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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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바(두부껍질)와 제철 채소 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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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감자버터와 옥수수 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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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알과 톳무침, 소유 미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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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로는 유자 향 풍미의 젤리와 현지산 우유 푸딩
무엇보다도 ‘모든 재료가 이 땅에서 났다’는 느낌이 좋았어요.
도시에서의 식사와는 다르게,
이곳에선 매끼니가 몸과 마음을 정돈해주는 ‘치유’의 느낌이 들었죠.
🌌 밤 – 증기, 별, 그리고 호수의 침묵
식사 후 다시 찾은 노천탕.
밤하늘은 흐리지도, 눈부시지도 않은 채
그저 조용히, 아주 또렷한 별빛을 보여줍니다.
탕 안에 앉아 있으면
김이 스르륵 피부를 감싸고,
멀리선 물소리, 가까이는 바람 소리,
그리고 그 모든 소리를 지우는 침묵.
그 안에서 저는 그동안의 복잡한 감정들이
천천히, 조용히 풀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 DAY 2 – 마슈호, 안개의 미학
**마슈호(摩周湖)**는 일본에서 가장 맑은 호수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그리 쉽게 드러나지 않아요.
연중 100일 이상 안개로 덮여 있어, 운이 좋아야만 맑은 호수를 볼 수 있죠.
전망대에 도착했을 땐… 역시나 짙은 안개.
하지만 이 풍경은 오히려 더 매혹적이었습니다.
하얗게 뒤덮인 구름 사이로
호수의 실루엣이 잠시 보였다 사라지는 그 찰나의 순간.
그건 마치
마음속에 잠깐 떠오르는 기억 조각
같았어요.
그리고 그 안개 너머를 바라보는 시간은
어쩌면 그 무엇보다도 나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내면의 풍경이었습니다.
🥚 지열 요리 체험 & 온천 카페 산책
이오잔(硫黄山) 근처
휴게소에선
지열 증기를 이용한 간식들이 가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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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황계란 (온천에서 직접 삶은 듯한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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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버터 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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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 수프 & 핸드드립 커피
가게 옆 족욕탕에 발을 담그고,
김이 피어오르는 언덕을 바라보며 따뜻한 감자를 먹는 그 순간—
도시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감각적인 ‘쉼’이었습니다.
근처의 가와유 온천 마을은
더 조용한 분위기.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온천수 증기가 곳곳에서 피어오르고,
작은 료칸과 고양이 한 마리가 마을을 지키고 있는 듯한 풍경.
🕯️ DAY 3 – 백조와 함께한 아침, 마무리 산책
굿샤로호는 겨울이면
백조 도래지로 유명해요.
호숫가엔 사람들이 놓아둔 사료를 먹기 위해
백조 무리가 모이고, 잔잔한 호수 위를 유영하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눈 내린 아침, 따뜻한 차 한 잔을 들고
백조를 바라보며 걷는 그 산책길은
‘일상의 소란’과는 정반대의 시간.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이 그곳엔 있었습니다.
📌 테시카가 자유여행 정리
구분 | 내용 |
---|---|
위치 | 홋카이도 동부, 아칸 국립공원 인근 |
교통 | 삿포로 → 쿠시로 → 마슈역 (JR), 렌터카 강력 추천 |
추천 숙소 | 굿샤로호 전망 료칸, 가와유 온천 여관 |
주요 명소 | 굿샤로호, 마슈호, 이오잔, 가와유 온천, 지열 요리 체험 |
추천 계절 | 가을~겨울 (특히 겨울은 설경 + 온천 조합 최고) |
음식 | 감자버터, 스키야키, 온천 계란, 홋카이도 우유 디저트 |
여행 키워드 | 안개, 고요함, 증기, 자연 치유, 지열, 침묵, 백조 |
✨ 마무리하며 – 가장 조용한 풍경이 가장 깊은 감동을 준다
테시카가는 ‘무엇을 했는지’보다
‘무엇을 느꼈는지’를 더 오래 기억하게 하는 여행지입니다.
소리 없는 안개의 호수,
지열이 피어오르는 땅,
밤하늘과 온천, 백조와 고요한 호숫가—
도시에서 지친 감각을 회복하고 싶다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 여행을 원한다면,
테시카가는 꼭 한 번
다녀와야 할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