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걷는 성” – 일본 고치 성 자유 여행

안녕하세요.

이번 시코쿠 여행에서는 조금 다른 방향을 택했어요.
온천도 좋고, 미술관도 좋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잠시 멈춰서 시간과 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 아닐까 싶었거든요.

그래서 향한 곳은 고치현 고치시,
그리고 그 한가운데 그대로 보존된 성곽과 천수각,
바로 **고치 성(高知城)**입니다.

🗺️ 고치 성이 있는 도시 – 고치란?

고치현은 시코쿠의 남동쪽에 위치한 비교적 한적한 지역이에요.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 엄청난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특히 막부 말기 유신 시대, 고치 출신의 인물 사카모토 료마 덕분에 역사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지역이죠.

고치 시는 그런 시대와 인물들의 기억이 담긴 도시이자,
오늘날엔 온화한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 그리고 깊이 있는 문화가 흐르는 느리지만 묵직한 도시입니다.

일본 전국에 있는 100여 개의 성 중,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몇 개 안 되는 성 중 하나.
고치 성은 단순히 천수각 하나만 남아 있는 성이 아니라,
천수각과 본마루(성 중심부), 성문, 망루, 해자, 성벽까지 모두 보존된 보기 드문 구조예요.

이런 곳은 일본에서도 많지 않기 때문에,
‘성덕(城オタク)’들의 성지로도 불리곤 하죠.

고치 성의 입구인 **오테몬(大手門)**은 위풍당당한 목조문입니다.
성벽과 돌담, 해자(물길)를 지나 이 문을 통과하는 순간부터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시작해요.

천천히 이어지는 돌계단은 마치 옛 장수들이 말 타고 오르내리던 길처럼 굽이굽이 이어져 있고,
옆엔 백년은 되어 보이는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며
방문자를 맞이합니다.

이 계단을 오를수록 마음도 차분해지고,
도시의 소음도 점점 멀어지더라고요.

천수각(天守閣)은 3층 높이의 목조건축물로,
약 400년 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요.
그 안엔 화려한 전시물보다도 그 시대의 공기와 구조가 그대로 보존돼 있는 게 특징이에요.

각 층을 오르며 보는:

모든 것이 하나의 타임캡슐처럼 남아 있어요.

📍 가장 위층에 오르면…

그 순간 생각했어요.
“과거의 영주가 이곳에 서서 지금의 도시를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곳에서 저는 과거와 현재가 맞닿은 그 감정을 잠시나마 공유한 기분이 들었어요.

고치 성의 또 다른 매력은 성 주변 마을에 있어요.
고즈넉한 골목길, 소규모 찻집, 전통 상점들이 줄지어 있고,
이곳을 걷다 보면 ‘관광지’가 아니라 ‘살아 있는 마을’이라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지나가는 사람마다 눈을 맞추고 인사를 건네는 따뜻함이었어요.
여행자는 이방인이지만, 이곳에선 그저 또 한 명의 산책자로 느껴졌어요.

고치 성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히로메 시장(ひろめ市場)
이곳은 여행자와 지역 주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활기 넘치는 장소예요.

꼭 먹어봐야 할 건 단연코

여행 중에 만난 현지 아저씨와 나란히 앉아
생맥 한 잔 기울이며 고치 이야기를 듣는 그 시간이…
‘진짜 여행’ 같았습니다.

늦은 오후 다시 성으로 올라가 보았어요.
해 질 무렵의 고치 성은 말 그대로 그림.

천수각에 마지막 햇살이 닿으면
돌담도, 나무도, 지붕도 주홍빛으로 물들어요.

그 순간, 바람이 살짝 불어오면
마치 과거의 기척이 스치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

조용히 숨을 고르며,
“오늘 하루 참 잘 살아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천수각에 서면, 고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내 마음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